영화리뷰 7

[영화리뷰] '오퍼레이션 피날레' 그리고 '아이히만 쇼'

#.prologue 악의 평범성 아이히만의 얼굴에서 악을 읽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직접 마주한 그의 언어와 사고는 듣는 이로 하여금 의구심만 자아낼 뿐이었다. 그를 재판장에 섰을 때, 그의 표정과 일관된 항변은 보편적인 죄의식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최종해결책'의 기획자는 그가 한 일에 비해 지나치게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히만을 세상에 내보이기까지는 피해자인 유대인의 노력이 요구되었다. 그에게서 '악의 평범성'을 목격할 때마다, 유대인들은 지난날의 잔상이 떠올라 괴로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직시해야만 했다. 악의 평범성의 기저에 깔린 사유의 공백을 발견해내야 했기 때문이다. 평범한 얼굴을 한 악은 언제 어디서든 발현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었다. 영화 '오..

영화리뷰 2022.01.29

[영화리뷰] '모가디슈' 그리고 'ARGO'

[영화리뷰] '모가디슈' 그리고 'ARGO' #. Prologue 도시의 정적을 깨는 총성은 공간의 정서를 뒤바꾸어 놓는다. 오늘 거닐던 거리는 더 이상 이전의 그것과 같을 수 없었다. 낯선 땅에 울린 총성은 고립된 이들로 하여금 겹겹의 불안으로 되돌아온다. 통제는 사라지고 분노만 남은 총알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총성이 가까워질수록 판단에 속도가 붙고 목표는 뚜렷해진다. 곧 들이닥칠 그림자 앞에서 멀어지는 것.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상황 따위의 것들은 죽음과의 거리가 유지될 때, 생각해볼 만한 것들이었다. 모든 것을 지우면 공포에 근접한 개인만이 남는다. 그리고 살아남은 개인은 살아남기 위해 '연대'한다. 1991년의 모가디슈와 1979년의 테헤란에 혁명의 기치가 휘날릴 때, 한 켠으로 밀..

영화리뷰 2022.01.29

[영화리뷰] 미스터존스

#. approach 미친 세상이라고 일컫는 시대였다. 제국주의의 욕망은 전쟁을 통해 한 풀 꺾였지만, 그 후유증으로 낳은 불안 증세는 유럽을 맴돌았다. 빈곤의 고통은 나치즘 따위를 불러냈고,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곧 윤리가 되는 혼돈의 시절이었다. 분명한 것은 모두가 선택의 문제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현실이지만 모두가 같은 선택을 하진 않았다. 진실을 가공하는 쪽을 택한 이들은 대의나 명분을 핑계삼아 자신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진실을 직면하는 쪽을 택한 이들은 직접 본 것을 전달해내겠다는 의지를 엿보인다. 뉴욕 타임스의 월터 듀란티와 로이드 조지의 전 외교고문 존스는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들이었다. 스탈린을 매개로 조우한 그들은 사실에 대한 상반된 태도를 보이며 이야기..

영화리뷰 2022.01.29

[영화리뷰] '박열과 후미코' 그리고 '유사쿠와 사토코'

#. prologue 시대극 영화를 접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드라마적인 느낌을 받곤 한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임에도 분명한데 이런 느낌이 드는 건, 지금 나의 일상과 영화의 시대적 배경 사이의 인터벌 때문은 아닐까? 그 시절이 갖는 특수성이 영화 속 캐릭터를 탄생 시켰다면, 동일한 시대의 공기를 마시지 않는 나로선 막연한 공감을 할 뿐이다. 그만큼 시대를 지배한 이데올로기를 체감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굵직한 사건보다 인물 하나하나에게 더 마음이 쓰인다. 시대에 내던져진 개인의 모습을 헤아리려는 시도는, 시간의 간격을 넘어서 그저 한 사람에게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 전제된 건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본 두 편의 영화는 시대의 조류 속에 움직이는 개인을 그려낸다. ..

영화리뷰 2022.01.29

[영화리뷰]'유다'와'시카고7'그리고'워싱턴 포스트'

#. prologue 1960년대 미국은 격동의 시기를 걷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암살'과'전쟁'은 시대가 제시한 합리성에 의문점을 낳는 키워드였고, 곧 거센 저항의 물결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는, 기존의 권위에 저항으로 답하는 움직임들이 이어졌다. 냉전, 자본주의, 사회주의.. 포스트 파시즘을 대변할 만한 것들이 스스로 결점을 드러내면서, 기존의 질서에 대한 의심을 자아낸 것이다. 새로움을 외치는 이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이에 대한 국가의 대답은 폭력을 통한 통제였다. 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파시즘과의 대결에서 승리했다는 기쁨은, 또 다른 모습으로 출현한 폭력의 등장에 자취를 감췄다. 작금의 질서에 의문을 제기했을 때, 돌아온 대답이 폭력이라면 혁명은 ..

영화리뷰 2022.01.29

[영화리뷰] '바이스'부터 '모리타니안'까지 | 권력을 낚아채는 사람들

[영화리뷰] '바이스'부터 '모리타니안'까지 | 권력을 낚아채는 사람들 #.prologue '팍스 아메리카나' 평화의 미국을 표방하는 슬로건이 허울 좋은 캐치프레이즈로 전락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미국이 국제사회에 자신의 몸집을 과시할 때마다, 스스로 건국이념을 거스르는 자가당착에 빠져버린 것이다. 베트남 전쟁에 얽힌 스캔들부터 이라크 전쟁을 획책하는 행정부까지, 도덕적 부채의식을 잊은 강대국의 선택이 스스로 위상을 깎아먹는 꼴이었다. 문제는 늘 시스템의 허점으로부터 시작됐다. 권력의 한계를 시험하고픈 이들은 그럴듯한 명분을 기다렸다. 마침내 타이밍을 잡으면 자신들의 레시피로 법치주의를 요리해버렸다. '견제와 균형'은 권한을 해석하는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새로운 나라를 꿈꾸던 헌..

영화리뷰 2022.01.29

[영화리뷰] '빅쇼트'에서 '인사이드 잡' 까지 모럴해저드에 대한 역설

[영화리뷰] '빅쇼트'에서 '인사이드 잡' 까지 모럴해저드에 대한 역설 #. prologue 2008년 모두가 과신한 시장에 거품이 걷히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끝을 모르고 치솟던 집값은 제동이 걸린 채 한없이 추락했다. 모두의 낙관을 담보 삼은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유례없는 비관을 안겨준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시장을 지탱하던 믿음으로 쌓아올린 빚더미였다. 파티가 계속될 거라는 믿음은, 빚 위에 빚을 쌓아올리는 빚잔치를 종용했다.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돈과 믿음이 마음껏 융자되었다. 시장에 깔린 '믿음'의 다른 이름은 '탐욕'이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이익을 추구할수록 거품은 부풀어 올랐다. 월스트리트는 불타는 집 앞에서 화재보험을 팔며 미소를 머금었고, 투자자들은 안정..

영화리뷰 2022.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