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악의 평범성 아이히만의 얼굴에서 악을 읽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직접 마주한 그의 언어와 사고는 듣는 이로 하여금 의구심만 자아낼 뿐이었다. 그를 재판장에 섰을 때, 그의 표정과 일관된 항변은 보편적인 죄의식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최종해결책'의 기획자는 그가 한 일에 비해 지나치게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히만을 세상에 내보이기까지는 피해자인 유대인의 노력이 요구되었다. 그에게서 '악의 평범성'을 목격할 때마다, 유대인들은 지난날의 잔상이 떠올라 괴로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직시해야만 했다. 악의 평범성의 기저에 깔린 사유의 공백을 발견해내야 했기 때문이다. 평범한 얼굴을 한 악은 언제 어디서든 발현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었다. 영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