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영화리뷰] '빅쇼트'에서 '인사이드 잡' 까지 모럴해저드에 대한 역설

칸타빌레유니버스 2022. 1. 20. 09:40

 

 

 

[영화리뷰] '빅쇼트'에서 '인사이드 잡' 까지 모럴해저드에 대한 역설

#. prologue      

 

2008년 모두가 과신한 시장에 거품이 걷히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끝을 모르고 치솟던 집값은 제동이 걸린 채 한없이 추락했다.

모두의 낙관을 담보 삼은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유례없는 비관을 안겨준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시장을 지탱하던 믿음으로 쌓아올린 빚더미였다.

파티가 계속될 거라는 믿음은, 빚 위에 빚을 쌓아올리는 빚잔치를 종용했다.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돈과 믿음이 마음껏 융자되었다.

 

시장에 깔린 '믿음'의 다른 이름은 '탐욕'이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이익을 추구할수록 거품은 부풀어 올랐다.

 

월스트리트는 불타는 집 앞에서 화재보험을 팔며 미소를 머금었고,

투자자들은 안정과 이익을 모두 잡은 금융상품에 취해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그리고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은 끝없이 오르는 집값에 기대어 빚잔치 초대장에 서명했다.

 

구성의 오류 (fallacy of composition)는 각자의 이익을 모아서 경제 전체를 집어삼켰다.
 

미국의 4대 투자은행 중 하나였던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은 더 이상 어떤 믿음도 소용없다는 방증이었다.

시장에 팽배한 불신은 자산매각 러시로 이어졌고 모든 가치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그토록 견고했던 믿음은 급락하는 자산 앞에서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렸다.

 

월스트리트 발 쓰나미는 세계 곳곳에 빈틈없이 들이닥쳤다.

탐욕과 무관한 사람들의 삶도 함께 휩쓸어가 버릴 만큼 금융 위기의 나비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진원지에는 여전히 풍요로운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집어삼키는 듯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내재된 부실을 '결함'이 아닌 '정보'로 활용하고,

부실한 상품을 태연하게 팔아치운 뒤 포상까지 챙긴 그들에게 윤리는 유명무실한 관념일 뿐이었다.

그들은 이익이 윤리를 압도하는 일에 꽤나 익숙해 보였다.

 

그렇다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과연 사고(accident)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본질이 '도덕적 해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 From Black Thursday to Legonomics.

 

 

 

it's ain't what you don't know that gets you trouble.

It's what you know for sure that ain't just so. 

                                           

                                                                                                                - MARK Twain.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은 미국인들에게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경각심을 이식했다.

 

대공황의 원인으로 은행의 무분별한 투기를 꼽은 정부는,

1933년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업무를 분리하는 법을 제정했다. 

엄격한 금융 규제는 '대공황'과 같은 경제 위기를 다시는 맞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였다.

이러한 규제에 발맞춰 '은행'은 따분한 업무를 취급하는 곳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수십 년 뒤 정부의 개입이 시장에 좋은 결과만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백해지자,

오래전 잠들었던 금융업의 본능이 고개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오일 쇼크가 몰고 온 스태그플레이션은 작금의 경제체제에 의구심을 일으켰다.

대공황 이후 미국을 이끌어 온 케인스식 경제체제에 미국인들이 점차 반기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금융자본주의가 도래할 날이 머지않았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러한 열망에 부응하듯,레이거노믹스가 등장했다.

 

 

신자유주의와 함께 노선을 그린 레이건 행정부의 정책은 금융업계의 호재로 이어졌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던 레이건 행정부는 '레이거노믹스'를 통해 위대한 미국을 재건할 것이라 믿었고,

이에 따라 30년에 걸친 규제 완화가 시작된 것이다.

 

금융 규제가 완화되는 과정에서 금융업이 내포한 '도덕적 해이'의 싹은 여기저기서 움트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의 로비와 정부의 규제 완화는 등가 교환되었으며,

클린턴 행정부에 이르러는 시티그룹 구제법이라 일컫는 '그램리치 블라이리 법(gramm leach bliley act)'이 의회를 통과한다.

1998년 시티코프와 트래블러가 합병하여 시티그룹으로 합병되는데, 이는 대공황 시절 제정된 글라스 스티걸 법에 위배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1999년 그램리치 블라일리 법이 통과되기까지, 이 거대한 합병을 견제해야 할 기관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대공황 이후 명시되어 온 규제의 법이 수명을 다하는 순간은 이처럼 허무했다

.

그런데 '글라스 스티걸 법'이 금융위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근간으로 한다면,

이 법이 효력을 상실한다는 것은 금융 위기가 재차 발생할 수 있는 전조가 되진 않을까?

 

 

2001년 인터넷 관련 주식시장에 부풀어 오른 거품이 터져버리는 '닷컴 버블 사태' 가 발생한다.

그런데 투자은행은 인터넷 주식 시장의 실패를 예감하면서도 관련 상품을 팔기에 여념이 없었고,

이러한 '도덕적 해이'가 불러온 닷컴 버블은 5조 달러의 손실을 투자자에게 안겨줬다.

그럼에도 이를 규제할 기관들은 또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침묵과 방관이 금융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예감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질 때쯤,

모두를 경악하게 만든 최악의 테러가 뉴욕을 강타한다.

 

 

9.11 테러의 충격은 주식시장에도 번져 미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쳤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요구되었다.

 

 

부시 행정부는 '오너십 소사이어티'를 내세워 이를 해결하고자 했으나,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집을 사고, 집값은 나날이 상승하는 상황은 투기로 이어지게 된다.

여기에 월스트리트의 '도덕적 해이'가 정점을 찍으며 모기지 시장에 어마어마한 거품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 It will explode in 2007

 

 

대공황 이후 따분해진 은행가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 건,

루이스 라니에리가 들고 온 MBS (Mortgage Backed Securitie) 라는 상품이었다.

 

기존 모기지 상품은 20~30년을 기다려야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 수익이 적은' 상품이라면,

MBS는 대출 만기를 기다리는 지루함은 접어두고 대출금을 조기에 회수할 수 있는 혁신적인 상품이었다.

유동성을 공급받은 은행은 이전보다 더 많은 대출을 할 수 있었고,

벌어들인 수익만큼 은행의 몸집도 마구 자라났다.

 

 

그런데 따분한 은행을 즐겁게 만든 MBS는 30년 뒤,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시장을 잠식해나갔다.

 

규제가 사라진 시장과 고도로 발달한 금융업,

그리고 금융업계에 축적된 '도덕적 해이'가 만나자 무시무시한 거품이 발생한 것이다.

 

재즈 시대를 연상시키는 금융 파티가 피날레에 가까워질 때쯤,

이 모든 상황을 예견한 소수의 사람들은 거품이 터질 날을 기다렸다.

 

그들이 예상한 피날레는 단순한 빚잔치가 아니었다.

빚에 빚을 쌓아올리며 촘촘하게 연결된 다이너마이트의 연쇄적인 폭발,

그것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투자의 후폭풍이자 초대형 쓰나미였다.

 

그리고 쓰나미에 배팅한 만큼 물밀듯이 밀려들어올 수익.

이것이 그들이 예상한 진정한 피날레였다.

 

 

"2007년 대부분의 대출의 고정 금리 기간이 끝나면,  채무불이행이 시작될 것이고

 그 비율이 15%를 넘기면 모든 것이 끝장 날 거예요!."

-영화 [빅 쇼트] 中 마이클 버리-

 

#. too big to fail

 

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데에는 믿음을 가장한 '탐욕'이 한몫했다.

 

MBS가 은행가에 혁신을 불러일켰다면,

CDO(부채담보부 권) CDS(신용부도스와프)는 돈을 벌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혁신 그 자체였다.

'위험 부담은 크지 않고 수익은 높은 모두를 만족시키는 상품'

 

 

위험과 수익은 언제나 애증의 관계였다.

위험할수록 수익은 높아졌고 안정적일수록 수익도 낮아졌다.

 

그런데 CDO CDS는 이러한 규칙을 깨뜨릴 새로운 대안이었다.

위험하지도 않고 수익도 높은 것처럼 보이는 상품은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여러 종류의 대출을 섞은 뒤 위험을 분산시켜 채권을 안정적으로 보이게 하는 CDO,

이런 CDO에도 닥칠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해 프리미엄을 받고 손실을 떠안아주는 CDS.

 

CDO CDS의 완벽한 조화는 투자자들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모기지 채권시장의 날갯짓은 파생금융상품(Financial derivatives)  힘을 등에 업고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뻗어나갔다.

집값이 회수되지 못하면 도미노처럼 무너질 상품들이었지만,

당장 눈앞의 이익은 '집값을 안 갚는 사람은 없다.'라는 믿음을 고취시켰다.

 

금융파생상품의 여파로 모기지 채권시장의 거품이 극에 달하자,

탐욕을 역이용하는 사람들의 움직임도 기민해졌다.

 

영화 [빅쇼트]는 시장을 불신하는 이들이 어떻게 탐욕을 이용하는지 상세히 묘사한다.

 

모건 스탠리 산하의 헤지 펀드였던 '프런트포인트 파트너스'는 잘못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모기지 채권 시장의 부실에 관심을 갖게 되고,

전화를 잘못 걸었던 도이체뱅크의 자레드 베넷은 '프런트포인트 파트너스'를 설득해 모기지 채권의 공매도를 부추긴다.

 

'프런트포인트 파트너스'의 대표 마크 바움은 아무도 믿지 않았기에 성공한 사람이었고,

'도이체뱅크'의 자레드 베넷은 작금의 시장을 믿지 않기에 은행과는 반대로 움직였다.

 

두 사람은 불신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협력할 여지가 있어 보였다.

 

마크 바움은 역배팅에 앞서 직접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발품을 파는데,

모기지 채권 시장의 부실이 곳곳에 넘쳐나는 실상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서서히 대출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채무자가 속출했지만 시장은 낙관적이었다.

모기지 채권시장은 강아지 이름으로도 대출을 해줄 만큼 무분별한 대출을 감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도 신용평가사는 부실한 채권에 최고 등급인 트리플 A등급을 남발하고 있었다.

이에 마크바움이 부하직원과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미국의 신용평가 회사) 찾아가 직원을 추궁한다.

여러번의 공방이 오간 끝에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의 직원 '조지아'는 실토한다.

 

"우리가 등급을 주지 않으면 고객(은행)은 무디스(경쟁 신용평가 회사)로 가버립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구성하는 원인은 다양했으나, 

신용평가사가 신용등급을 산정하는 방식이 일을 크게 키운 건 확실했다.

그들이 산정한 등급이 '믿음'을 생산하여 많은 투자자들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을 눈앞에서 목도한 마크 바움은 모기지 채권을 공매도하는 '빅쇼트'에 뛰어들기로 결정한다.

 

이윽고 거품은 걷히고 심판의 날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거품이 터진 뒤 월스트리트를 감도는 기류는 복잡 미묘했다.

시장의 붕괴에 혼비백산한 이들의 패닉이 거리를 가득 메웠지만,

한 편에서는 시장의 실패를 예감한 이들에게 주어진 보상이 쏟아지고 있었다.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된 금융업계의 로비와 압박,

그리고 모든 것이 잘못되더라도 구제받을 수 있다는 믿음.

이렇게 겹겹이 쌓아올린 '대마불사'의 신화는,

리먼브라더스의 파산과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물론 대마불사의 신화가 완전히 산화된 것은 아니었다.

AIG는 단기적 이익에 눈이 멀어 대량으로 발행한 CDS의 손실을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했고,

얼마 뒤 임직원에게 거액의 보너스를 지급했다.

 

또한 쓰나미를 일으킨 주범이 전리품을 거둬들이는 진풍경도 발견됐다.

골드만삭스는 부실한 채권으로 가득한 CDO를 거침없이 판매했고,

CDO가 무너져야 돈을 버는 CDS를 잔뜩 사들여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극빈층으로 전락한 노동자들과 여전히 살아남은 거대 은행이 공존하는 광경은 꽤나 기이했다.

이것은 정부의 느슨한 규제와 금융계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 빚어낸 합작품이었다.

 

[빅쇼트]의 주인공들도 결국 모기지 시장에 역배팅하고 큰 수익을 챙겼다.

그들에게 윤리를 거론하는 건 사뭇 순진해 보인다.

 

'도덕적 해이'와 '시스템의 부재'는 이익을 추구함에 있어서 윤리를 배제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을 면밀히 관찰한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반대급부를 얻었다.

 

2008년 경제 위기로부터 10년하고도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른 현시점에서,

우리는 성실하게 세상을 관찰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마크 트웨인에 말마따나 '뭔가 확실하게 안다는 착각'을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it's ain't what you don't know that gets you trouble.

It's what you know for sure that ain't just so. 

                                           

                                          - MARK Tw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