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팍스 아메리카나'
평화의 미국을 표방하는 슬로건이 허울 좋은 캐치프레이즈로 전락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미국이 국제사회에 자신의 몸집을 과시할 때마다, 스스로 건국이념을 거스르는 자가당착에 빠져버린 것이다.
베트남 전쟁에 얽힌 스캔들부터 이라크 전쟁을 획책하는 행정부까지,
도덕적 부채의식을 잊은 강대국의 선택이 스스로 위상을 깎아먹는 꼴이었다.
문제는 늘 시스템의 허점으로부터 시작됐다.
권력의 한계를 시험하고픈 이들은 그럴듯한 명분을 기다렸다.
마침내 타이밍을 잡으면 자신들의 레시피로 법치주의를 요리해버렸다.
'견제와 균형'은 권한을 해석하는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새로운 나라를 꿈꾸던 헌법 제정의 기억은 점차 퇴색되었다.
그리고 권리장전이 떠나간 곳에는 권력의 남용이 자리를 대신했다.
9/11 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의 행보는 그러한 기억을 구체적으로 상기시킨다.
Bewere the quiet man.
for while others speak, he watches.And while others act, he plans. And when they finally rest ... he strikes.
#. vice
위기를 기회로..!
세상의 모든 일이 양면성을 갖는다면, 선과 악의 구분도 다소 모호해진다.
누군가에게 옳은 일이 누군가에게 나쁜 일이 된다면 선택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일 아닌가?
하지만 정의라는 이름 뒤에 숨은 탐욕은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 시스템을 이용한다.
시스템의 허점은 정의롭지 못한 선택을 정의로워 보이게 할 수 있다.
따라서 눈을 부릅뜨고 시스템을 주시하지 않으면 기회를 포착하는 자가 선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다.
역대 최고의 권력을 가졌던 미국의 부통령 딕 체니는 기회를 포착하는 재능이 탁월했다.
닉슨이 실각하던 날 밤,
딕 체니의 얼굴에 만연한 미소는 조용히 기회를 낚아챈 낚시꾼의 얼굴과 같았다.
행정부의 도덕적 타락이 국민들의 도탄을 자아낼 때, 체니는 힘의 공백을 메꿀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 여파는 '백악관 최연소 수석'이라는 영예를 체니에게 안겨주었지만,
그것은 정권 교체의 당위성마저 제공한 터라 공화당의 빅보이 체니는 곧 물러나야만 했다.
그러나 그의 재능은 곧 그에게 다시 기회를 줄 것만 같았다.
'단일 행정부론 ( Unitary Executive Theory)'
그의 재능은 권력의 한계를 파고드는 궁금증으로 이어졌고, 그가 발견한 가능성은 적절한 때를 기다리게 했다.
체니의 야심에 동조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야망을 기획하고 그것을 실행할 날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리고 시스템이 여전히 허점을 보이는 순간, 체니에게 기회는 찾아왔다.
권한에 대한 집착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머지않은 것이다.
Where law ands, Tyranny begins
#. an axis of evil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고 했던가?
시스템의 허점을 포착한 건, 비단 딕 체니뿐만이 아니었다.
2001년 9월 11일 세계 최강국의 경제와 국방의 상징이 화염에 휩싸였다.
부시 행정부가 국내 정책에 대해 무관심한 모습을 보여왔다는 내용이 열거되어 있다.
9.11 이후 부시 행정부의 폭주를 보면 국내 이슈에 대한 무관심이 당연스럽게 느껴질 테지만,
정권 출범 직후 이런 분위기를 겪은 내각 관료는 다소 얼떨떨하였을지도 모른다.
부시와 딕 체니, 도널드 럼즈펠드, 데이빗 에딩턴 등 부시 행정부는 이미 답을 정해놓은 듯 움직였다.
그들의 목소리는 줄곧 하나의 나라를 겨냥했다.
"Iraq."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한 9/11테러는 테러에 대한 경각심과 시스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지만,
부시 행정부는 혼란스러운 국내 상황을 적절히 이용하며 권한 확대를 위한 시도를 이어갔다.
딕 체니는 또 한번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잡았던 것이다.
사실 딕 체니의 야망은 '조지 w 부시'가 대선 후보 시절 그에게 러닝메이트를 제안하면서 불이 붙었다.
아버지 부시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아들 조지 w 부시의 열망은,
이미 석유기업 핼리버튼의 수장으로써 부와 명예를 누리던 딕 체니의 눈을 번뜩이게 했다.
부시에게 본능형 지도자라는 허울 좋은 수식어를 붙인 체니는 권력을 쥘 또 다른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시의적절하게 직을 제안한 부시 덕에 딕 체니는 [하고 싶은 일을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오래전, 닉슨 행정부 시절 체니가 의회 인턴십 프로그램을 수행하던 중 럼즈펠드와 나누던 대화가 오버랩된다.
닉슨이 키신저의 방에서 나누는 밀담 덕분에 캄보디아에 폭격이 일어날 것이라는 럼즈펠드의 이야기에 체니가 묻는다.
" 우리 신념은 뭔가요?"
이에 럼즈펠드는 파안대소하며 자신의 집무실로 사라진다.
그때 딕 체니가 체득한 권력의 습성은 오래도록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상원과 하원 그리고 국방부와 CIA.. 등등 힘이 닿는 곳마다 자신의 집무실을 설치한 체니는
권한의 확장을 통해 어디에도 있는 딕 체니를 만들어냈다.
어디에도 있는 딕 체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의회, 삼권분립, 견제와 균형 ... 그것들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원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체니였다.
하지만 딕 체니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뜻밖의 순간에 시작된다.
9/11 테러 이후, 미국 땅을 감싼 정서는 공포심이었다.
이를 놓칠 리 없었던 체니는 부시와 함께 과감한 행보를 이어갔다.
체니는 닉슨의 워터게이트 이후 약화된 행정부의 권한을 공포심을 통해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테러와의 전쟁'
부시 행정부는 자국의 안보를 명분 삼아 헌법 질서를 뒤흔들고 시민권 규제를 강화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애국자 법(Patriot Act)의 발효나, 해외정보감시법 관련 규정을 위반하는 일도 이 시점을 토대로 시작된 일이었다.

영화 '모리타니안'은 쿠바의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행해진 테러 용의자에 대한 비인간적인 고문과 구금에 관해 다룬다.
'정해진 법률적 절차를 따르지 않기 위해 미국이 아닌 타국에서 테러 용의자를 심문한다.'
권한에 대한 해석을 요구하는 딕 체니의 집착은 '고문'의 방법에서도 이어졌다.
강화된 고문 방법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또 한 번 법률적 해석에 기댄 것이다.
이는 제네바 협약을 무시하는 처사였고, 재판도 없이 무기한 구금이 가능한 최악의 감옥을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행해지는 '고문'은 영화를 통해 묘사되는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움이 느껴질 만큼 참혹하다.
이러한 참혹한 수준의 고문을 행하고도 미국 정부는 유의미한 정보를 얻어내지 못했다.
이라크에 대한 전쟁도 마찬가지였다.
부시를 위시한 이들이 부르짖던 '대량살상무기'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이른바 '악의 축'이라고 지칭하며 침공한 이라크에서 발견된 것은, 권력에의 욕망뿐이었다.
다만 이라크 침공 다음 해부터 핼리버튼의 주식은 500% 상승했다.
#. power
역사를 되돌아볼 때,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대가는 결코 일시적이지 않다.
미군 철수 이후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한 아프간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아프간과 이라크를 지나간 미국의 흔적은 지금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의 무게는 생각보다 훨씬 무겁게 세상에 내려앉아있다.
영화 '바이스' 의 말미에 딕 체니가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 이를 은유적으로 설명한다.
'당신들이 날 선택했고, 난 당신들 요구대로 했을 뿐입니다.'
미국의 선거제도는 정/부통령을 동시에 선출하는 특징이 있다.
러닝메이트 딕 체니의 권력은 유권자의 선택의 결과이다.
눈을 부릅뜨고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행사하지 않으면,
누군가 그 권한의 공백을 낚아채고 말 것이다.
영화'바이스'의 두 번째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나면 짧은 쿠키 영상이 나온다.
미디어 그룹의 설문 조사 도중, 정치적 성향의 차이로 치고받는 아저씨들을 지켜보며
한 소녀가 말을 꺼낸다.
"분노의 질주 다음 편은 언제 나오지?"
세상이 점점 혼란스러워질수록,
우린 코앞의 일에만 집중하고,
인생의 흐름을 바꿀 거대할 힘은 무시한다.
-영화 [바이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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